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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리비아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국제관계 개선을 위해 핵무기와 화학무기를 포기하기로 미국과 약속하였다. 그러나 8년 후 그 결과는 카디피 정권의 해체와 카다피의 죽음이었다. 지금 미국은 북한에게 과거 카다피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다른 국가의 통치 방식과 핵무기 보유 여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러한 외교문제에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권리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카다피를 지원했다가 철회했고,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다가 철회했다. 미 정부는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크를 1950년대 초반까지 지원했다가 영국과 함께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켰고, 파나마 마뉴엘 노리에가 정권을 지원하다가 후에 해체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 사례는 다양하다.
이제 북한 정권은 스스로 다음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심각한 국제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에 거대한 분쟁과 폭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불신은 깊어질 수 있다. 이는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이란과 북한은 다른 국가들이 미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해체되는 것을 지켜봤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정권교체와 해체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현재 '반드시 축출해야 한다'고 천명한 대상은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이다. 물론 그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을 해체시키겠다는 미국의 선언은 아사드 정권과 반군과의 잔혹한 유혈 사태를 야기 시켰다.

사실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아니라 아사드 정권을 비호하고 있는 이란이다. 미국이 아사드 정권을 해체 시키고자 하는 주된 이유는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미 정부는 아사드 정권을 압박했지만, 이는 이란과의 대리전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정권교체는 미 정부와 미 중앙정보부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 정부는 다른 국가의 정권 해체가 가져오는 심각한 부작용을 해소하는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란과의 대치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3년 미국과 영국은 이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모사데크는 이란의 석유는 영국과 미국이 아닌 이란의 소유라고 믿었고 이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결국 모사데크는 미 CIA와 영국 MI6에 의해 축출되었고 팔레빌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그는 79년 이란 혁명 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무자비하게 이란을 통치한 국왕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란은 핵무기 국가들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이 국가들은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 비준하였으나 그 조약을 준수하지 않았음에도 미국과 동맹국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법보다는 정치적 힘에 의해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NPT를 어기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나라는 반드시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원칙보다는 정치적 권력 행사에 가깝다. 핵무기 긴축이 미국과의 평화가 아닌 미국에 의한 정권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연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란이 미국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핵문제도 유사하다. 국무장관 케리가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받으며 존중받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한다. 김정은이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에게 말했듯이 김정은은 오바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두 사림이 대화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기 전까진 어떠한 대화도 없다는 것을 천명했다. 즉 미국은 '선포기 후대화' 구도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충고가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되 상대국에게 핵전쟁과 굴욕적인 후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합니다. 핵무기 시대에서 이러한 대결구도를 조장하는 것은 미 외교 정책의 실패이며 전 세계를 공멸시키는 것입니다."

미국이 합리적이고 분별있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현 위기상황을 쉽게 진정시킬 수 있다. 북한은 전쟁이 아닌 존중을 바라고 있다. 지금은 대화할 때이다. 긴장을 낮추고, 대결국면을 피하고, 비현실적이거나 굴욕적인 요구들을 강요하지 말아야한다. 미국은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미국이 다른 국가에게 '좋은 행동'을 하라고 설득하려면, 그들을 축출했던 미국의 나쁜 정책부터 수정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여야가 개헌 논의를 위한 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자칫 개헌이 개악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선거제도 개혁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지역주의를 볼모로 삼아 제도권 정치를 지배해온 기존 거대정당들의 기득권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퇴행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면 경제민주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지금 개헌론의 대세는 5년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이에 공감을 표시했으며, 국민들 사이에도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어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책임정치를 실현하게 하고, 비대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승자독식 논리에 따른 권력투쟁의 정치문화를 권력분점 논리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제법 설득력 있는 논리다.

그런데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권력을 누가 누구와 나누고, 누가 누구를 견제하며, 누가 누구와 타협한다는 것인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기득권 정당들끼리 나누어 먹기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을 새누리당과 싸잡아 기득권 정당이라고 폄훼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조금 진보적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했듯이 사회경제정책 면에서 양당의 차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민주당이 진보성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당의 색깔을 바꾼 것이나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건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대선 패배로 멘붕에 빠져 있을 때 터져 나온 실세들의 ‘쪽지예산’과 외유논란, 선거에 연전연패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이 각자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당, 이런 것이 민주당의 모습 아니던가.

과거에 김문수 경기지사가 자신의 정치노선 변경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당선은 천국이고 낙선은 지옥”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한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야말로 승자독식의 제도로 되어 있어서 수많은 폐해를 자아내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군소정당에 대한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어 있고, 이는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양대 정당의 기득권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다. 정치시장의 독과점화로 유효경쟁이 사라지고, 저질 정치가 지속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원래 지역의 재력가나 명망가에게 유리한 선거제도이다. 더구나 양대 정당의 정치시장 독과점은 당 실력자들이 공천에 큰 힘을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공적 가치에 헌신적이며 유능한 인재보다는 당 실력자들에게 유용한 인사들이 공천을 받기 십상이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를 이루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강화되어버린 까닭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민주화가 심화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며, 그 핵심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다. 비례대표제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제값을 쳐주고, 정치혁신을 유도하며, 정책경쟁과 합의정치를 조장하는 제도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강력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이라는 것은 비교정치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권력구조 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이다. 안 그래도 재벌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에서 선거제도 개혁 없이 섣부르게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를 실시했다가는 금권정치의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매일 6300명, 매년 234만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죽어간다. 인간 세상에 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이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 돈 몇 푼 더 벌자고 뻔히 알면서 사람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 문명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달 24일 방글라데시 사바르에 있는 ‘라나 플라자’ 건물이 무너졌다. 의류공장들과 상점들이 들어선 8층짜리 건물이 무너질 당시 약 2000명이 건물 안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600명을 넘어서는 끔찍한 사고였다. 사고 전날 건물 벽에 금이 갔는데도 건물주는 대피는커녕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안전을 우려하여 출근하기를 꺼리는 일부 직원들에게 해고 위협까지 했단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빼다 박은 것 같다. 로이 라메시 찬드라 다카무역노조 위원장은 “이번 참극은 사고라기보다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라고 했다. 사바르에서 무너져 내린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탐욕에 눈이 먼 건물주, 노동탄압과 부패로 얼룩진 방글라데시 정부, 도덕 불감증에 빠진 다국적기업, 그리고 이들의 존재를 용인하는 모든 지구촌 인간들의 양심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일주일 전에는 미국의 텍사스주에서 한 비료공장이 폭발해 14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폭발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마치 핵폭탄이 터진 듯이 공장 상공에 버섯구름이 발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테러를 의심했으나 위험물질 관리 소홀로 인한 안전사고로 밝혀졌다. 세계 최대의 부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기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회사의 안전관리는 엉망이었고, 당국의 감독은 허술하였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작업장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이 마지막으로 해당 공장의 안전검사를 한 것이 1985년이었다. 그간 크고 작은 사고와 민원이 빈발했는데도 무려 28년 동안 직업안전위생관리국의 검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기업이 마음대로 돈을 벌게 해주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며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고,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젯거리라고 주장하며 직업안전위생관리국 등 각종 정부기관의 권한과 인원을 축소한 레이건 정부 탓이다. 텍사스에서 폭발한 것은 비료공장만이 아니다. 시장만능주의·성장지상주의·물신주의의 우상이 폭발한 것이다.

사고공화국 한국도 다르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터키·멕시코와 더불어 산재사망률 1위를 다투는 나라다. 지난 3월14일에만 해도 전남 여수산단 대림산업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2012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한 한라건설의 경우 항만청의 피항 권유까지 무시하는 하청회사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지난해 12월 울산신항 북방파제 앞 해상에서 12명의 사망 사고를 일으켰으며, 2년 연속 ‘특별상’을 받은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불산 유출 사고에 이어 지난 2일 또다시 유사한 사고를 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화학사고를 근절할 생각보다는 현재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반대 로비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국회 법사위는 대표적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로 꼽혀온 이 개정안 통과를 보류했다. 삼성전자에서 누출된 것은 불산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누출된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이윤보다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 더는 없어야 한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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