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경제민주화 하지 않으면 복지국가 할 수 없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경제민주화 후보 지원 구구팔팔응원단 구성 유종일 KDI 교수

[신동호가 만난 사람] 참으로 괴이한 사건이다.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그는 그런 인터뷰라면 사양하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제민주화를 강령 1조에 명시한 당이 그 상징 인물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이른바 ‘유종일 실종사건’ 이야기다.

경제민주화는 4·11 총선과 연말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그런데 공천은 그와 무관하게, 심하게 말하면 거꾸로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종일 KDI 교수|사진·김석구 기자


특히 민주통합당 헌법119조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으로서 야권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주도하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가 공천에서 배제된 것은 그 자체도 이상하지만 과정도 미스터리 극처럼 복잡 미묘하다. 

지난 3월 27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를 위한 토크 콘서트’에 갔다. 99%국회점령프로젝트라는 단체가 주최한 이 행사에 유 교수를 비롯해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 박영선 민주통합당 전 최고위원, 선대인 세금혁명당 대표, 곽정수 한겨레신문 기자 등이 패널로 참여했고, 2부 순서에는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가 합류했다. 여·야 공히 말로는 경제민주화를 주창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게 토크 콘서트의 주된 내용이었다. 

들을수록 경제민주화가 물 건너가는 듯해서 2시간 반 내내 속이 쓰렸지만 유 교수의 말에서 한 가지 위안을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력을 멈출 수 없고,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민주화 실현에 도움이 될 후보를 지원하는 ‘인디유세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서 인터뷰 접점이 찾아졌다. 다음날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여·야가 말로는 경제민주화를 약속하면서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말한 ‘유체이탈 화법’이 생각나네요.

“아이고, 참…(웃음) 제가 뭘….”

-특히 민주통합당의 그런 모습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지난 10년간의 이른바 민주정부가 잘한 일도 많은데 결국은 국민의 심판을 받고 권력을 내줬잖습니까. 그렇게 된 데는 몇 가지 분석이 있는 것 같아요. 우선 남 탓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조·중·동이 어떻다, 재벌과 강남 부자들이 못살게 굴었다, 심지어는 국민을 탓하기도 합니다. 국민이 누가 자기편인지도 모르고 바보같이 투표를 했다, 대통령은 앞서가는데 국민은 어떻다, 이런 화법까지 등장하기도 했죠. 그렇게 남 탓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일이 잘 안 되는 게 다 자기 탓만 있겠습니까.”

두 번째는 정책은 좋았는데 정치적으로 미숙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도 은근히 많다는 게 유 교수의 말이다. 말을 세련되지 못하게 하는 등 경험 미숙에서 나온 실수가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다는 것으로서, ‘한 번 더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분석이라고 말했다.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정책이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죠.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장만능주의 경제사조에 휩쓸려서 양극화를 조장하고 재벌의 힘만 더욱 더 키운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부자감세, 규제완화, 토건주의라고 해서 많이 비판했지만 그런 것은 민주정부 때 다 진행됐던 부분이고 양극화도 그때 더 심화됐던 게 사실이죠. 그런 것을 깨달은 분이 많이 있어요. 강령 1조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고 경제민주화특위를 만들어 저 같은 사람에게 정책을 만들라고 한 게 다 그런 반성의 소산이라고 봐요.”

-과거 민주정부 시절에 잘못한 점, 반성해야 할 점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습니까.

“잘못한 거요? 아휴, 이 얘기는 이제 그만 하려고 하는데… 제가 사실 많이 글에 썼어요. IMF 탓도 굉장히 컸죠. IMF사태 이후에 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시장만능주의 논리가 잔뜩 들어온 겁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리해고, 공기업 민영화, 은행 해외 매각, 금융시장 개방, 이런 것들이 쫙 이루어졌고, 재벌개혁을 처음에 좀 한다고 하다가 규제완화 쪽으로 계속 가버렸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지금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려고 하는데 그게 언제 없어졌습니까. 형식적으로 완전히 없애버린 것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9년이죠. 하지만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실질적으로 없어진 건 참여정부 때인 2007년이라고 합니다. 그런 신자유주의적 정책 방향의 가장 결정판이자 가장 상징적인 것은 역시 한·미 FTA고요.”

-경제민주화가 어떤 것이고 왜 필요한지를 국민 생활과 결부해서 쉽게 설명한다면….

“저는 10여년 전부터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경제에 민주주의가 어딨느냐’는 반응이었죠. 그때 제가 가장 알아듣기 쉽게 얘기한 것은 재벌이 다 해먹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게 경제민주화론이라는 거였어요. 재벌 독식이 왜 나쁩니까. 완전히 불공정하게 경쟁하잖아요. 다른 하나는 그 결과로서 일어나는 분배 문제예요. 지난 3년 동안 상위 30대 대기업은 매출이 56%, 영업이익이 73%가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은 정체거든요. 늘어난 것은 가계부채예요. 경쟁은 공정하게 해야 하고 분배는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경제민주화의 핵심이죠.”

-재벌도 그런 독식구조 속에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텐데요. 국민경제가 피폐해지면 스스로 생존할 터전을 잃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말씀이에요. 노동자나 협력업체를 쥐어짜다 보면 결국 기술이나 소비의 기반을 잃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공장도 외국으로 나가고 매출도 외국에서 올리게 되고요. 세계화의 함정이죠. 그런데 이제 세계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지지 않습니까. 다행히 중국이 지금까지는 고도성장을 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혜택도 많이 받고 있죠. 올해 초에 다보스포럼에서 대전환을 얘기했잖아요. 막무가내식 탐욕과 무절제, 극단적인 이윤추구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하고 건전하고 부를 나누고 소득을 함께 늘려나가는 경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 자본주의의 대장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한 얘깁니다.”

-우리나라 경제권력은 전혀 그런 인식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명박 정부가 탄생할 때 내세웠던 대표적 공약이 747과 한반도대운하 아닙니까. 비록 둘 다 폐기가 됐지만 747을 하기 위해서 하려고 했던 정책을 다 폈고, 4대강 사업이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선의를 갖고 했겠죠.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투자도 많이 하고 고용도 많이 늘려서 많은 사람한테 혜택이 갈 거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투자도 안 하고 고용도 안 늘리고 자기들끼리만 배불리는 거예요. 오히려 골목상권이고 중소기업 업종이고 물불 가리지 않고 다 먹어 들어가고, 서민은 못 살겠다고 하고, 정부 인기는 팍팍 떨어지니까 아, 이게 잘못됐구나 하는 인식을 한 겁니다. 그래서 동반성장위원회라는 것도 만들었잖아요. 물론 그걸 얼마나 실효성 있게 했느냐, 진정성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여러 가지 문제제기는 할 수 있죠.”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인터뷰 다음날(3월 29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사퇴했다. 유 교수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좌초’를 경제민주화 문제와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동반성장이든 경제민주화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실제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실제로 할 사람이 중요한 거거든요. 사람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해서 안 되는 겁니다. 정운찬 선생님이 느끼는 좌절감도 거기에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정책만 편 것입니까. 기여한 게 하나도 없나요.

“기여했다고 볼 만한 내용은 찾기가 어렵고요. 아주 부분적이지만 제가 환영한 정책은 은행이나 공공부문에서 고졸사원 채용을 장려한 것입니다. 지금 학력 과잉이 심각하고요. 울산에는 굳이 대학을 안 가려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나와도 보수 잘 받고 제법 안정성 있는 직장을 구하기가 쉬우니까요. 한국 경제 현실을 그렇게 만들어야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 정책은 참 잘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죠. 그 정도 가지고는 굉장히 미흡합니다만.”

정치권은 어떤가. 경제민주화의 험로는 두 사람의 정치적 좌절이 웅변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여·야 대표선수인 새누리당 김종인 비대위원과 통합민주당 유 교수의 사퇴와 낙천이다. ‘복지와 일자리, 경제민주화를 새누리당이 만들겠습니다’, ‘끝까지 99% 국민 편에 서겠습니다’(통합민주당)라는 양당의 플래카드가 개그인 양 풍자되는 까닭이다. 

-비록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이번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면서요.

“제가 뜻있는 분들하고 ‘구구팔팔응원단’, 공식 명칭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인디응원단’인데요, 99%를 위해서 팔팔하게 뛰는 후보들을 선정해서 그분들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지원활동을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경제민주화는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입법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정책의지나 실천의지를 모아낼 사람이 많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공천 결과가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을 최대한 당선시키자는 것이지요.”

인터뷰 이틀 뒤(3월 30일)에 발표한 구구팔팔응원단에는 그를 포함해서 박창근 관동대 교수, 서해성 작가, 선대인 세금혁명당 대표, 우석훈 타이거픽처스 자문, 윤원일 안중근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 이상이 제주대 교수, 이용철 변호사, 이해영 한신대 교수, 최영찬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민주통합당 후보 17명, 통합진보당 후보 4명, 진보신당 후보 1명, 무소속 후보 1명 등 23명을 경제민주화 후보로 선정, 발표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지원 요청이 없었습니까.

“몇 가지 요청이 있었습니다. 저는 현 지도부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는 지극히 박약하다고 판단하고 공천 과정에서 저에 대해 있을 수 없는 무례한 약속위반을 했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기로 했고요. 그 과정에서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순수한 의지를 확인한 거예요. 너무나 많은 분들이 공분을 느끼면서 저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거죠. 국민 입장에서는 유종일 개인이 특별히 예뻐서 그렇겠습니까. 제가 상징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늘 말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정파적 과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제이고 시대적 과제이며, 온 국민의 요구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정당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직은 내놓은 상태입니까.

“사퇴를 하려고 하는데요. 사퇴를 만류하면서 공식 사과를 하겠다고 해요. 저는 (대표가) 공식 사과를 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책임이 없는 사무총장이 하는 건 소용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바라던 국민이 받은 상처가 있잖아요. 특히 전주 시민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거든요. 거기에 대한 사과가 없는데 제가 협조를 하는 건 그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런 상태예요. 그렇다고 아, 사과 필요 없다, 이렇게 하긴 또 그렇잖아요. 그래 사과해라, 그러고 있는 거죠.”

-국민적 관심 인물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경제민주화 의지나 실천 능력은 어떻게 봅니까.

“그분은 기업 경영을 해봤고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느낀 것이 있고, 특히 IT업계에서 재벌의 폐해를 많이 인식하게 됐고 그것을 ‘삼성동물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잖아요. 그런 건전한 경제관에 비추어봤을 때 크게 봐서 경제민주화에 공감하고 진정성을 가진 분으로 평가해요. 단 그분은 정책을 잘 모릅니다. 대권에 뜻이 있다면 선한 의지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정책적인 부분까지 철저히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가장 큰 정치 화두이자 이슈였던 복지라든가 양극화 문제가 올 들어 경제민주화로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경제민주화가 선행돼야 복지든 양극화 해소든 가능하다는 거죠. 대선까지 포함한 큰 구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입니까.

“굉장히 좋은 말씀입니다.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으면 복지국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5·16 쿠데타 이후 개발독재 체제에서 산업화를 급격하게 이뤄냈습니다. 25년 후 1987년 6월항쟁으로 정치민주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25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부터 앞으로 25년은 경제민주화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반듯한 나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파를 떠나서, 또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런 큰 역사적 패턴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저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선에서 반드시 경제민주화가 가장 중심적 화두로 다시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311115051&code=920100

Posted by 유종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