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정의 두 가지 측면: 등가교환과 평등

공정의 사전적인 의미는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것이다. 영어로 fairness and justice다. 공평이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의미한다. 그렇다 면 공정의 다른 한 부분인 정의란 무엇인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마이클 센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정의에 관해서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다양한 이론을 내놓고 있다. 어떠한 정의론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서 공평과 정의의 교집합은 확대될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정을 논함에 있어 정의론을 복잡하게 논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정의감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공평이다. 정의감이란 곧 불공평한 것을 보면 분노하는 도덕 감정이다. 그래서 정의론의 대가인 존 롤스(John Rawls)나 아마티야 센(Amartya Sen)은 정의란 곧 공평(justice as fairness)이라고 주장한다. 정의가 곧 공평이라면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뜻의 공정 또한 공평에 다름 아니다. 즉, 공정이란 용어는 공평과 정의의 교집합이라는 정교한 개념을 표현하기보다는 그냥 공평함을 가리키는데 공평이야말로 정의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공정도 결국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이라는 것이데, 고르다는 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고름의 한 차원은 교환행위에 적용된다. 호혜적인 교환행위에서 주고받는 가치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등가교환을 의미한다. “지난번에는 내가 점심 값을 냈으니, 이번에는 네가 내겠지.”하고 기대하는 것이나,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들은 곧 등가교환으로서의 공정을 토대로 한 것이다. “아니, 왜 나만 항상 점심값을 내야 하는 거야?” 혹은 “같은 공장에서 똑같이 일했는데 왜 나는 임금을 반밖에 못 받는 거야?”라고 불평할 때 우리가 가지는 불만의 핵심은 교환행위에서의 불공평이다. 공정거래법에서 의미하는 공정도 등가교환이다. 경쟁적 시장에서의 거래는 등가교환을 보장하는데 독점적 지위를 가진(혹은 만들어 낸) 행위자가 이를 이용해서 경쟁가격 이상에 판매하거나 그 이하에 구매하는 경우 불공정 거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이 항상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네가 많이 버니까 점심 정도는 네가 사는 게 맞잖아.”라고 할 수도 있고, 상급자 나 연장자가 점심값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이미 많 이 가진 사람에 비해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유리한 거래는 공평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소위 “벼룩의 간을 빼 먹는” 거래에 대해서는 심각한 도덕적 분노가 따르게 된다. 이러한 고려는 고름의 또 다른 차원인 평등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등가교환은 행위에 관한 개념이지만 평등은 분배의 상태에 관한 개념이다. 평등사상은 분배의 평등화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 등은 만인평등사상을 확립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All men are created equal.)"라는 것이다. 이러한 만인평등사상은 현대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평등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합의는 훨씬 약하다. 무엇의 평등을 말하는가에 따라 평등사상의 구체적 내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논의를 단순화하자면 법 앞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계약의 자유)를 포함하는 사전적 평등과 소득분배나 부의 평등과 같은 사후적 평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전적 평등은 사후적 평등에 비해 더욱 압도적인 도덕적 정당성을 누리고 있지만, 사후적 평등에 관한 요구도 일정하게 존재한다. 사전적 평등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은 그것이 평등사상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도 되기 때문이다.

사전적 평등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기초를 이루는 이념이다. 사실 시장경제는 신분의 속박, 토지의 속박으로부터 개인이 해방되고 누구나 계약의 자유를 누리게 됨으로써 획기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시장경제의 기초로서 사전적 평등은 곧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고, 따라서 등가교환을 보장하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쟁적인 시장경제는 본디 공정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시장경제는 매우 불공평한 제도로 인식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다양한 이유로 시장에서 등가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부등가교환 이 횡행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설사 등가교환만 이루어지더라도 사후적 평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심각한 불평등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으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적인 입장에서는 사전적 평등과 등가교환을 보장하기만 하면 사후적 평등의 달성과는 무관하게 공정한 시장경제는 완성된다. 하지만 롤스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와 같은 입장에서 보면 사후적 평등이 공정경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자의적 법집행과 사전적 평등의 파괴

법 앞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 공정한 경쟁, 등가교환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전제이다. 공정사회의 전제로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어서 이와 관련한 특별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공평한 법집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집행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이 만연하고,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과 눈치 보기가 일상화 되어 있다. 재벌 총수들은 천문학적 액수의 탈세와 횡령을 해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반면, 서민들은 사소한 범죄로도 복역을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사법부의 심판을 받는 경우는 보기 어려워도, 흘러간 권력이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서는 엄중하다.

특히 검찰의 경우 금력과 권력에 물들어 정의의 사도와는 먼 길을 가고 있다. 최근 불거진 스폰서 검사 파문이나 몇 해 전에 있었던 삼성X파일 파문 등에서 보이듯 심각한 부패의 사슬에 얽혀있다. 권력추종도 낮 뜨거울 정도다. 살아있는 권력과 관련된 사건 수사는 예외 없이 "몸통은 간 데 없고, 깃털만 나부끼는" 수사에 그치면서 야당이나 기타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편파적이고 무리한 수사를 해댄다.

법원도 돈과 권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재벌 총수 판결들이 한 결 같이 관대하고, 촛불 사건 재판과 관련해서 상부의 압력이 작용한 사례도 있었다. 그래도 법원은 사법부에 속해 있기 때문에 행정부의 일부인 검찰에 비해서는 정권에 대한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연주 전KBS사장의 경우 고법까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비근한 예다.

공정사회를 향한 첫 걸음은 사법개혁이어야 한다. 기소독점주의와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기하고 검찰권 행사에 경쟁압력을 가하고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의 인사는 독립적인 인사위원회를 통해 매우 엄정한 검증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검찰총장과 지방 검사장의 경우에는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이 해법이 아닐까 싶다. 교육감 선거를 두고도 말이 많았지만, 그 덕분에 무상급식도 나왔고 교육관료주의도 조금씩 개선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시장과 등가교환의 파괴

법 앞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이라는 사전적 평등은 공정경쟁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형식적으로는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유의미한 경쟁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공정경쟁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자유로운 사적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극심한 경제적 궁핍이나 정보의 부족으로 자기파괴적인 거래나 기타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계약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장기매매나 아동노동 혹은 (나라에 따라서는) 대리모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거래를 사회가 금지했다면 누구도 자발적으로 이런 거래를 택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보완조치가 따라야 한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과 의무교육, 기본적인 정보제공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둘째, 자유방임적인 시장에서는 힘의 불균형에 의한 경쟁의 왜곡이 발생하여 부등가 교환을 초래할 수 있다. 원래 시장경쟁이 효율적인 까닭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이 아니라 혁신(가치창조)에 의한 경쟁만 허용되는 제한적인 경쟁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사기 등 형사상의 불법행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장 지배력, 자금력, 로비력, 정보비대칭 등을 활용하여 경쟁적 수익률 이상을 거두는 것은 원칙적으로 모두 불공정한 경쟁이다. 그러한 초과수익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된다. 단, 혁신에 의해 초과수익을 거두는 경우는 정당하다. 혁신으로 인한 혜택의 일부는 혁신주체에게 초과수익으로 돌아오지만 나머지는 사회 전체로 퍼지게 된다.

자유방임적인 시장에서 발생하는 부등가 교환의 극단적인 예가 약탈적 거래 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저에 있었던 약탈적 대출이 대표적인 예다. 종속적 하청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 재벌기업이 기술 빼앗기나 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등가교환이 보장되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해서는 사전적 혹은 형식적 평등을 보완하는 두 가지 추가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경제적 강제에 의한 자기파 괴적 거래를 방지하고 경쟁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부여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과 함께 교육 및 의료 등 인적자본에 대한 기초적인 투자를 사회화하여야 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힘의 불균형이 불공정 거래로 이어지지 않도록 엄정한 공정거래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러한 면에서 아직 미흡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가 말해주듯이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도록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안전망이 그만큼 부실하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하청계열화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산업구조와 비정규직의 오남용이 만연한 고용구조가 공정경쟁과 등가교환의 구조적 장애물로 자리 잡고 있다.

4. 공정사회와 사후적 평등

법 앞의 평등을 비롯해서 사전적 평등이 확실히 보장되고 또한 사회안전망이나 공정거래를 위한 필수적인 규제 등이 마련되어 공정한 시장경제가 실현되었다고 가정하자. 즉, 등가교환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 때 등가교환에서 고려되는 가치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심리적 보상도 포함한다. 자식에 대한 상속이든,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든, 사회에 대한 기부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적 가치의 이전은 그에 상응하는 심리적 보상을 대가로 받는 등가교환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보상뿐 아니라 미래에 경제적 대가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등가교환이 철저하게 준수된다면 공정은 완전히 실현된 것이다. 설사 극심한 사후적 불평등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는 결코 불공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진적 과세 등 사후적 불평등의 시정을 위해 자발적 동의를 하지 않는 개인들에게 부담을 강제하는 것을 불공정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는 세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첫째, 등가교환 이전에 이루어진 과거의 부의 축적이 정당하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다. 소위 원시적 축적에 관한 것이다. 장물의 거래가 불법이듯이 부당하게 취득한 부의 이전은 비록 그것이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이다. 노직도 이 점은 인정한다. 한국에서는 특히 부의 형성과정에 대한 강한 정당성 시비가 존재한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부의 축적을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은 정경유착과 부동산 투기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후의 적산 불하가 있었고,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처벌 실패로 그들이 신생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의 부를 대표하는 재벌의 기원과 성장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경제발전과정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벌과 부유층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황석영의 <강남몽>과 조정래의 <허수아비춤>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둘째, 사전적 평등과 사후적 평등이 현실적으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사전적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 앞의 평등이나 계약의 자유와 같은 형식적 평등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경쟁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모두에게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전적 평등이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과 인적자본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요구한다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그런데 보다 완벽한 사전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여건을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에서 확보해 주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사후적 분배는 미래의 경쟁에 대해서는 사전적 여건의 일부가 된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한 경쟁을 예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입시가 공정하게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순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만 의해서 경쟁의 결과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운도 따르겠고, 무엇보다 가정환경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후적 불평등이 심하다면 이는 곧 경제적인 여건에서 가정환경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고, 대학 입학경쟁은 불공정경쟁이 되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부의 대물림을 통해서 커다란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공평함 또는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과 부의차이는 대체로 네 가지 요인에 의해 비롯된다. 본인의 능력과 노력, 운, 그리고 상속받은 재산 등이다. 일반적으로 본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차이는 상당 부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운 또한 소득과 부의 편차를 유발하는데 중요한 요인인데 운에 의한 부는 정당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겠다. 하지만 운은 대개 본인의 선택과 연관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운에 따른 차이도 비교적 용인하는 편이다. 하지만 부의 대물림에 의한 편차에 대해서는 본인의 선택이나 노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에서 수용도가 더 떨어진다. 그것도 자기 복이라고 인정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출발선부터 큰 편차가 나는 것에 대해선 만인평등사상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후적 평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부의 대물림만큼은 반대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본인의 능력이나 심지어 노력도 상당부분 상속받는 것이다. 상속은 재산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유전자로도 한다. 그리고 교육 및 가정환경도 상속의 유력한 방법이다. 가치관이나 절제력 등 성격적 특성도 상당부분 출생 배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후적 불평등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는 능력을 개발하고 노력을 기울일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운이나 상속효과와 본인의 노력을 정확하게 구분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결국은 등가교환의 원칙과 사후적 평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수밖에 없다. 적절한 균형이란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것일 수도 있고, 롤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철저한 평등주의적 입장에서 한 사회의 최저소득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후적 불평등만을 용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년 간 사후적 불평등이 점차 확대되어 왔다. 소위 양극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사후적 불평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더 큰 불평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결과는 결코 아니다. 빈곤층의 증가를 보면 롤스의 minimax 원칙에 의한 불평등의 증가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양극화의 극복은 공정사회의 관점에서도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5. 공정사회,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화두로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했고 국민의 호응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과연 공정사회를 위한 실절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현 정부가 공정사회 실현을 위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것은 소위 친서민정책과 상생정책이다. 이를 두고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불만을 표시한다. 보수 쪽에서는 보수정권이 인기영합주의적 정치를 하다 보니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자꾸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권이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고 한다면, 이명박 정권은 거꾸로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 쪽의 불만은 “정책방향은 좋은데 진정성이 없으니 실효성 있는 정책이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과 제도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적 수사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친서민정책이나 상생정책이나 필요한 정책들이지만 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 같다. 공정사회를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가장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것부터 추진하는 것이 올바른 우선순위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공정사회를 지향한다고 할 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공정한 법치주의의 확립이다.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공정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도록 사법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검찰이 진행하는 각종 대형 수사에 관해 불편부당하고 엄정한 법집행이라고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를 굳이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법정의의 구현 다음으로 우선순위는 시장에서의 등가교환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중요하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경쟁에 실패한 사람들도 재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거래 관련 법규정을 엄격히 하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심각한 양극화 현실을 감안할 때 복지나 규제 등을 통해 사후적 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들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볼 때 공정한 시장경제제도를 확립하여 사전적 평등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반적인 공정거래 규제 외에도 우리 현실을 감안한 정책이 필요하다. 공정경쟁과 등가교환의 구조적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하청계열화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산업구조와 비정규직의 오남용이 만연한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가 두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제까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축소보다 확대의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제 와서 상생과 친서민을 외치는 것이 조금 공허하게 들리기도 하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개혁의 방법론과 관련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정책 몇 개 바꾸고 재벌총수들에게 압력 넣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것이 시민참여의 의한 개혁이다. 시민참여는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햇볕정책이다. 햇볕을 비추면 살균이 되듯이,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면 각종 불공정의 균들이 노출되고 축출될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소셜 미디어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0.11.4 한국경제연구원 <공정사회와 시장경제>포럼 주제발표문)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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