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분기(7~9월)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작년 동기대비 7.1% 급감했다.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로 자본조달비용이 크게 낮아졌는데도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대외적으로는 세계경기의 불확실성, 대내적으로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거론한다.” (동아일보 12월10일자 3면)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전면에 내걸었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최근 ‘경제위기론’과 ‘성장론’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보수언론들이 경제민주화를 경제 회복의 ‘장애물’로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길을 잃고 있는 모양새다. 알맹이 없는 재벌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선의 초점은 ‘과거’와 ‘안철수’로 옮겨갔다. 대선을 불과 9일 앞둔 10일 오후,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만난 이유다. 자칭 타칭 ‘경제민주화 전도사’라고 불리는 유 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총선 때까지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119 특위’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성장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 유 교수는 “박근혜 정권은 경제민주화의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낫다”고 평가하면서도 “‘비판적지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실행하면 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가 오늘 아침 신문에 있었다. ‘경제논리’를 무시한 공약들이 시행되면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된다는 논리인데, 어떻게 보나.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민주화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다는 얘기를 한다. 한 마디로 투자할 맛이 안 난다는 이야기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참여정부나 김대중 정부나 마찬가지로 기업들 투자 의욕을 고취시키겠다고, 규제완화도 해주겠다고 그랬고 특히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의) 기를 살려준다’고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런다고 투자 하느냐. 애들 장난 같은 이야기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얘기가 기업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를 강화하면 수익성이 저하되기 때문에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얼핏 보면 맞는 얘긴데 굉장히 큰 함정이 들어가 있다. 지금 규제를 하자는 건 재벌대기업으로 너무 경제력이 집중 되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고, 이들이 경제권력을 남용해서 여러 가지 초과 이윤을 벌어들이는 불공정한 행위를 막자는 이야기다.” 
 
“그럼 거기에 따라서 재벌대기업의 수익률이 내려가는 부분은 있을 거다. 그러나 그 대신에 하청기업이나 중소기업처럼 보호를 받는 쪽에서는 (수익성이) 조금 더 나아질 거다. ‘기업의 수익성이 내려간다’고 말하는 건 한쪽 편만 드는 거다. 기업이 왜 거기(재벌대기업)만 기업인가. 대한민국 경제에는 재벌만 있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훨씬 큰 국민경제가 있고 중소기업이 있다.”
 
  
▲ 유종일 KDI 교수. ⓒ이치열 기자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올랐는데,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이야기 되는 재벌개혁만 하더라도 실제 순환출자 금지나 출총제 부활 같은 정책들이 얼마나 재벌 대기업을 통제할 수 있을지 분명하지 않다. 어떻게 보나.
 
“우선 마치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거의 모든 것인 것처럼 그렇게 논의가 흘러가고 있고, 그 중에서도 기존의 순환출자를 봐줘야 하느냐는 문제가 재벌개혁의 요체인 것처럼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건 굉장히 안타깝다. 경제민주화라는 건 소수 특권적인 지위나 힘을 가진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경제시스템이 아니고, 대다수 국민을 위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건 경제시스템의 포괄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문제, 노동시장의 문제, 금융시장의 문제, 그리고 경제정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런 굉장히 많은 영역에서 그야말로 민주적 관점에서 경제를 재구성 해나가는 게 필요한데, 논의가 너무 협소하게 지금 진행이 되어서 굉장히 안타깝다.” 
 
“한 가지만 지적을 하자면, 통상정책을 민주화하는 건 경제민주화의 너무나 중요한 부분일뿐더러 지금 한국경제와 관련해서 가장 정치적으로 최근에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논란이 됐던 이슈다. 지금 경제민주화를 다들 이야기 하면서 그 부분(한미 FTA)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대선 이슈에서 그게 사라져버린 거다. 그걸 보면서 지금 이게 경제민주화 얘기를 바로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민주화가 넓은 의미에서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면, 그런 관점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평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보면 문재인 후보 쪽이 박 후보의 공약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고 본다. 좀 더 포괄적이고 조금 더 구체적이다. 그런데 지금 일반 유권자들 입장에서 경제민주화를 누가 진짜 할까,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하는 부분이 와 닿지 않는다. 그게 손에 와 닿게 해야 효과적인 선거 운동이 되고 그 힘을 가지고 선거 후에도 어젠다를 밀고 나갈 수도 있다.” 
 
“박근혜가 된다면, 또는 문재인을 뽑는 건 이걸 이렇게 바꾸는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반복해서 얘기하고 그걸 통해서 전선을 형성하고 이렇게 됐어야 하는데 이번 대선이 안타깝게도 그런 면에서 굉장히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각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최우선적인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굉장히 부각된 것 같기도 하지만, 거의 전선이 잘 형성되지 않고 있다. 전선은 엉뚱하게 과거에 이랬느니 저랬느니, 안철수 후보가 나왔느니 들어갔느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경제민주화가 부각된 것은 반갑지만, 다른 한편에서 내용을 들여다 봤을 때는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역대 정부에서 매번 강조했던 게 재벌개혁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그동안) 왜 잘 안됐는지를 봐야 한다. 과거에 왜 이게 잘 안 됐는지, 앞으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어떤 전략이 필요하고 어떤 점에 유념해야 하는지,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논의가 거의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 재벌개혁을 막는 힘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극복할 건지, 개혁세력이 뭐가 부족했던 건지에 대해 굉장히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고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이명박은 나쁜 놈, 우리 편은 좋은 편, 이런 식의 얄팍한 진영논리가 너무 앞서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그러다보니까 민주진보개혁세력이 부족한 점을 깊이 성찰하고 하는 노력이 굉장히 부족했다. 그건 결국 (민주당이)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데 있어서 굉장한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달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5대문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 캠프
 
-경제민주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기구로 정부 조직에 ‘민주경제원’을 창설하자고 하셨다. 어떤 구상인가.
 
“경제민주화의 가장 직접적인 장애물은 재벌-모피아-국제금융자본의 ‘삼각동맹’이다. 이들의 막강한 힘이 작용하고 특히 정부 안에도 상당수의 고위직 경제관료들이 이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경제민주화 추진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굉장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선 후보들이 주장하는대로 가장 중요한 게 경제민주화라고 한다면, 그에 걸맞게 정부 조직도 그런 국정목표를 반영해서 그걸 추진하는 ‘총사령부’에 강력한 권한과 위상을 줘야 한다. 과거에 우리가 박정희 시대에 강력한 정부주도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경제기획원을 만들어서 이끌어나가도록 했듯이, 강력한 경제민주화 시대를 이끌어 나갈 그런 정부기구가 필요하다. 그 정도를 해야 삼각 동맹을 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민주경제원’을 박정희 정부 시절의 ‘경제기획원’과 비교하셨는데, 당시는 국가가 주도해서 산업화를 이끌었던 시기이고, 지금은 국가가 주도해서 뭘 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지 않나. 안팎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저는 그렇다.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건 무슨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국가주도의 경제를 하자는 게 아니다. 시장의 기능과 시장원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시스템이 그동안 너무 성장 지상주의, 특히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왔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극심하게 됐고 그래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해서 경제는 성장 한다는데도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축소가 되는 구조로 왔다. 심각한 병에 걸린 시스템이이다.”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경제기획원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짰던 것처럼 ‘경제민주화 5개년 계획’을 짜서 실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5년에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차근차근 해야 한다. 그런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부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얘기를 한 거다.”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기 위한 집권세력의 기반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후보는 물론,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민주경제원을 만들어도 거기에 들어가서 의지를 갖고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 워낙 막강하니까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이 일정하게 역할을 할 거다. 그러나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 참모들, 와서 보고하는 장관들, 수석비서관들이 다 ‘지금 경제민주화가 필요하긴 합니다만 세계경제가 안 좋고, 유럽이 지금 상황이 안 좋고 수출이 떨어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이런 조치들은 기업에 부담이 된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얘기하면 그걸 감당하기 힘들다.” 
 
“그걸 감당하고 넘어가려면 본인 스스로 굉장한 확신과 어떤 정책적 판단에 대한 자신감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또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팀웍이 잘 짜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권은 경제민주화의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팀웍을 짤 자원도 부족하고 내부에 경제민주화와는 정 반대되는 철학과 소신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고 세력 기반 자체가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지난달 16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CBS 노컷뉴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좀 낫다. 낫긴 한데,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많고, 또 경제민주화 철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 대해서는 옛날에 하던 ‘비판적지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경제민주화가 되는 게 아니다.” 
 
“어제 벙커원에 강연을 가서도 그 이야기를 했다. 좋은 편 나쁜 편 갈라서 우리 편이 잡으면 좋은 세상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민주화라는 게 결국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힘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경제민주화를 실제로 이뤄내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견인해야 한다.” 
 
-대선도 중요하지만 대선이 끝난 다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 내년에도 우리 경제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무슨 경제민주화냐, ‘성장’이 답‘이라는 논리에 맞설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논리는 뭘까.
 
“앞으로 그 이야기가 계속 나올 거다. 내년 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데, 경제도 어렵고 일자리 만들어야 한다면서 기업들의 의욕을 북돋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올 거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 
 
“미국이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한 것이 1935년이다. 1935년의 미국경제는 지금의 한국경제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극단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그런 경제였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된 이래 미국의 산업생산이 거의 반토막이 났고, 실업률이 25%로 올라가고 그런 상황에서 뉴딜 개혁이 시작됐다. 1933년 3월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집권을 하고 그때부터 당시 가장 강력했던 금융자본과 재벌에 대한 규제를 하고,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하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경제를 살리기 시작했던 거다.” 
 
“그것이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도 똑같다는 거다. 복지를 하고 재분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경제 상황에서는 마치 1935년의 미국경제가 그랬듯이 그게 성장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복지를 하지 말자? 경제가 어려우니까 경제민주화를 하지 말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될 거짓 선전이다.” 
 
  
▲ 유종일 KDI 교수. ⓒ이치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