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발족한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으니 축하한다고 할 수는 없고,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굴곡진 역사를 뚫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국가 주도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 자본독재의 폐해가 누적되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국가와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조와 자기책임, 공정과 연대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과 상부상조를 원칙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사회의 균형과 통합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뒤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많은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형 정책연구원으로서 지식협동조합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식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농협이나 신협, 그리고 생협 같은 것은 익숙한 존재지만 지협이라니, 이건 아무래도 생소하다. 에프시(FC) 바르셀로나나 에이피(AP)통신을 비롯해서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협동조합이 존재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열심히 뒤져봐도 네덜란드에 있는 ‘녹색지식협동조합’ 외에 지식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몇 분이 구상과 기획을 한 적은 있으나 정식으로 지식협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은 ‘좋은나라’가 처음인 것 같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스스로를 ‘지식과 문화의 생산과 공유 및 확산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협동조합’이라고 규정하고, ‘공동체를 위한 종합적인 싱크탱크 기능과 다양한 지식 관련 경제사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식의 생산과 소비야말로 협동조합이 필요하고 또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대부분의 지식, 특히 정책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지식은 당파성에 물들기 쉽기 때문에 정책 논의의 저질화 우려가 있다. 물론 정책 논의가 완전히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친 진영논리와 정파주의에 빠지면 논의의 수준이 낮아지고 억지주장이 판치게 되며,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기보다는 갈등을 조장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의 생산과 전파 과정에서 권력과 자본의 입김을 배제하고 시민의 편에 서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도모하는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진영논리가 강하고 사회적 갈등도 심하다. 학문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 즉 특정 세력이나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대다수 시민의 편에 서는 입장을 인정받는 정책연구기관의 부재가 한 원인일 것이다. 한국의 정책연구기관들은 단 한 곳도 세계 100대 싱크탱크에 들지 못하고, 그나마 가장 대표적인 곳들은 정부나 재벌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시민의 편에서 정책 관련 지식의 생산과 확산을 추구하기 위한 경제적·조직적 토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이 안성맞춤이다. 대학과 시민단체의 역할도 있으나, 대학은 상아탑이 되어 현실과 거리를 두거나 돈맛에 빠져 본연의 사명으로부터 멀어진 경우가 허다하고 시민단체는 대체로 경제적 토대가 부실하다.

지식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토대다. 그러나 지식의 생산과 소비는 대표적인 시장 실패의 영역이다. 지식은 협동을 통해서 커지며,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협동조합은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 지식활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나눔을 동시에 실현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2003년 리비아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국제관계 개선을 위해 핵무기와 화학무기를 포기하기로 미국과 약속하였다. 그러나 8년 후 그 결과는 카디피 정권의 해체와 카다피의 죽음이었다. 지금 미국은 북한에게 과거 카다피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다른 국가의 통치 방식과 핵무기 보유 여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러한 외교문제에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권리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카다피를 지원했다가 철회했고,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다가 철회했다. 미 정부는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크를 1950년대 초반까지 지원했다가 영국과 함께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켰고, 파나마 마뉴엘 노리에가 정권을 지원하다가 후에 해체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 사례는 다양하다.
이제 북한 정권은 스스로 다음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심각한 국제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에 거대한 분쟁과 폭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불신은 깊어질 수 있다. 이는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이란과 북한은 다른 국가들이 미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해체되는 것을 지켜봤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정권교체와 해체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현재 '반드시 축출해야 한다'고 천명한 대상은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이다. 물론 그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을 해체시키겠다는 미국의 선언은 아사드 정권과 반군과의 잔혹한 유혈 사태를 야기 시켰다.

사실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아니라 아사드 정권을 비호하고 있는 이란이다. 미국이 아사드 정권을 해체 시키고자 하는 주된 이유는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미 정부는 아사드 정권을 압박했지만, 이는 이란과의 대리전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정권교체는 미 정부와 미 중앙정보부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 정부는 다른 국가의 정권 해체가 가져오는 심각한 부작용을 해소하는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란과의 대치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3년 미국과 영국은 이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모사데크는 이란의 석유는 영국과 미국이 아닌 이란의 소유라고 믿었고 이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결국 모사데크는 미 CIA와 영국 MI6에 의해 축출되었고 팔레빌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그는 79년 이란 혁명 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무자비하게 이란을 통치한 국왕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란은 핵무기 국가들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이 국가들은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 비준하였으나 그 조약을 준수하지 않았음에도 미국과 동맹국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법보다는 정치적 힘에 의해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NPT를 어기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나라는 반드시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원칙보다는 정치적 권력 행사에 가깝다. 핵무기 긴축이 미국과의 평화가 아닌 미국에 의한 정권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연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란이 미국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핵문제도 유사하다. 국무장관 케리가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받으며 존중받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한다. 김정은이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에게 말했듯이 김정은은 오바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두 사림이 대화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기 전까진 어떠한 대화도 없다는 것을 천명했다. 즉 미국은 '선포기 후대화' 구도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충고가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되 상대국에게 핵전쟁과 굴욕적인 후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합니다. 핵무기 시대에서 이러한 대결구도를 조장하는 것은 미 외교 정책의 실패이며 전 세계를 공멸시키는 것입니다."

미국이 합리적이고 분별있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현 위기상황을 쉽게 진정시킬 수 있다. 북한은 전쟁이 아닌 존중을 바라고 있다. 지금은 대화할 때이다. 긴장을 낮추고, 대결국면을 피하고, 비현실적이거나 굴욕적인 요구들을 강요하지 말아야한다. 미국은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미국이 다른 국가에게 '좋은 행동'을 하라고 설득하려면, 그들을 축출했던 미국의 나쁜 정책부터 수정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여야가 개헌 논의를 위한 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자칫 개헌이 개악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선거제도 개혁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지역주의를 볼모로 삼아 제도권 정치를 지배해온 기존 거대정당들의 기득권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퇴행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면 경제민주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지금 개헌론의 대세는 5년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이에 공감을 표시했으며, 국민들 사이에도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어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책임정치를 실현하게 하고, 비대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승자독식 논리에 따른 권력투쟁의 정치문화를 권력분점 논리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제법 설득력 있는 논리다.

그런데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권력을 누가 누구와 나누고, 누가 누구를 견제하며, 누가 누구와 타협한다는 것인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기득권 정당들끼리 나누어 먹기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을 새누리당과 싸잡아 기득권 정당이라고 폄훼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조금 진보적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했듯이 사회경제정책 면에서 양당의 차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민주당이 진보성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당의 색깔을 바꾼 것이나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건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대선 패배로 멘붕에 빠져 있을 때 터져 나온 실세들의 ‘쪽지예산’과 외유논란, 선거에 연전연패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이 각자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당, 이런 것이 민주당의 모습 아니던가.

과거에 김문수 경기지사가 자신의 정치노선 변경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당선은 천국이고 낙선은 지옥”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한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야말로 승자독식의 제도로 되어 있어서 수많은 폐해를 자아내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군소정당에 대한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어 있고, 이는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양대 정당의 기득권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다. 정치시장의 독과점화로 유효경쟁이 사라지고, 저질 정치가 지속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원래 지역의 재력가나 명망가에게 유리한 선거제도이다. 더구나 양대 정당의 정치시장 독과점은 당 실력자들이 공천에 큰 힘을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공적 가치에 헌신적이며 유능한 인재보다는 당 실력자들에게 유용한 인사들이 공천을 받기 십상이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를 이루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강화되어버린 까닭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민주화가 심화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며, 그 핵심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다. 비례대표제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제값을 쳐주고, 정치혁신을 유도하며, 정책경쟁과 합의정치를 조장하는 제도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강력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이라는 것은 비교정치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권력구조 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이다. 안 그래도 재벌의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에서 선거제도 개혁 없이 섣부르게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를 실시했다가는 금권정치의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1. 김대중의 자서전을 밤새 읽으며 눈물 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대중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초인적인 인내와 의지로 군사독재에 맞서 싸워준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없이 감사해야 마땅한 위대한 희생이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876월항쟁 이후 찾아온 직선제 개헌에 따른 민주화, 그리고 97년 역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 발전의 커다란 이정표에 김대중의 이름은 크게 새겨져 있다. 비록 그의 사상에 유교적 도덕주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대통령 재임 중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시대착오적 관행을 타파하지 않았던(못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오늘날 이명박 정부의 퇴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은 김대중에게 빚진 바가 참으로 많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2. 열린우리당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정당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친노 및 일부 개혁세력이 민주당을 깨고 만든 정당이다. 당시 창당을 주도한 이들 중 하나가 평소 내가 올곧은 정치인이라고 보고 가까이 했던 천정배였다(이런 관계는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나는 세월이 편치 않아 외국에 나가 있다가 20046월에 귀국하였는데, 당시는 탄핵여파로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원내과반수를 막 차지한 터였다. 이 막강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이해찬과 천정배가 경합하였는데 노무현이 지원한 이해찬을 천정배가 물리치고 원내대표가 된다(그런데 천정배는 노무현을 지지한 첫 번째 의원이었고, 이해찬은 노무현이 가장 싫어했던 정치인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내가 귀국하자마자 천정배가 저녁자리에 초대하여 원내대표 경선과 관련한 조언을 구했다. 여럿이 함께한 자리라 말을 아끼며 몇 가지 조언을 한 후에 식사자리에서 나오면서 천의원에게 물었다. "도대체 다음 대선 전에 없어질 또 하나의 포말정당을 왜 만들었습니까?" 천의원은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되물었다. 몹시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나의 대답은 또 하나의 질문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이념은 뭐고, 주된 정책노선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합니까?" 천정배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말문이 막혔다. "글쎄, 그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그러니 열린우리죠. 세상에 무슨 정당이 아무런 이념과 비전도 없이 정치개혁 하나 내세우면서 권력을 달라고 한답니까? 이건 당신이 뭐라고 하던 노무현 정당에 불과하고, 그래서 노무현이 물러나기 전에 문 닫을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날카로운 나의 지적에 천정배는 조금 당혹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과거에 국민회의나 새천년민주당이나 창당과정에서 당의 이념과 정책을 고민하고 이를 앞세운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김대중 대통령 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참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될 지점입니다."

내가 보기에 김대중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다. 청년시절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이승만 정권 때 노동운동론을 전개하고, 박정희 치하에서 대중경제론을 구상하고, 마침내 IMF 체제 하에서도 노사정위원회를 만들고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어낸 데에는 그의 진보적 성향이 일관되게 반영된 것이다. , 그는 스스로 말했듯이 정치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에 입각해서 현실을 변화시켜가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실현가능한 진보를 이루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김대중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평생 유지하였으니 자유주의자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런 나의 해석이 옳건 그르건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 김대중은 현실 권력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도 이념과 비전을 항상 근본적인 자리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김대중에게 배웠으면 하는 점이다.

3. 김대중은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인물이고, 그래서 엄청난 희생을 온몸으로 치러낸 비극적 인물이며, 마침내 믿을 수 없이 끈질긴 의지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을 때에는 이미 시대에 뒤쳐져버린 희극적 인물이었다.

미국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IMF 위기로 인해 완전 무장해제 당한 상태에서 집권함으로써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정리해고 등 미국과 IMF의 압박을 고스란히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에게 자산을 헐값매각하여 국부유출을 시키면서 이를 외자유치라고 강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민주정부가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앞장서고 양극화를 조장하여 민심이반을 초래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동자를 국정의 한 축으로 삼아보겠다는 시도를 했고, 비록 IMF 눈치 때문에 생산적 복지라는 포장을 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복지의 틀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실업문제에 적극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저소득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앞장서고 결과적으로 민심을 잃게 된 책임에서 김대중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후 2007년과 2012년에는 저소득층 지지가 보수 후보에게 쏠렸고, 이에 힘입어 보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오늘날 야당이 지리멸렬한 또 하나의 중대한 원인은 김대중 리더십의 한계다. 그는 제왕적 총재였고,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제왕적 리더십이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나은 지도력을 길러낼 수 있는 정당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김대중이 떠난 민주당은 이념도 없고 리더십도 없는 부실정당으로 전락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라고 이해하고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남은 것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 불임정당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도 사실 김대중은 중요한 개혁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맞물려 만들어낸 폐해가 바로 정책경쟁과 타협에 의한 갈등조정보다는 죽기살기식 권력투쟁을 중심으로 형성된 투쟁적 정치문화고 패거리 정당이다. 김대중은 이러한 후진적인 정치문화와 정당을 생산적인 정치문화와 정책정당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핵심 고리임을 간파하였고, 나아가 가장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선진적인 인식에 이르렀다. 비록 현실정치의 한계 때문에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금 늘리는 선에 그치고 말았지만 김대중이 생각했던 정치개혁의 방향은 놀랍도록 정확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김대중에게 배움으로써 김대중의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21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 주최 김대중 정신 토론회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임)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재벌옹호의 6가지 오류와 편견 [2012.03.05 제900호]
[이슈 추적 1] 재벌개혁 비판 넘어 그릇된 주장하는 보수언론 등 재벌 대리인들… 헌법을 부정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궤변들

▣ 곽정수


여야 정치권이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자, 재벌의 로비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맞대응 대신 외곽 지원 세력을 동원하는 우회 전략을 쓰고 있다. 그 주된 대리인들은 전경련이 지원하는 자유기업원, 자매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그리고 친재벌 학자들과 보수언론이다. 그들의 주장은 개별 정책의 효율성 같은 부수적 비판 차원을 넘어 경제민주화, 양극화, 경제력 집중 등 재벌 개혁의 핵심 내용에 대한 인식에서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중에는 오류와 편견이 적지 않아, 자칫 국민에게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성이 있다. 대표적인 6가지 오류와 편견을 뽑아 문제점을 살펴본다.

»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원들이 2월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동반성장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통 생태계’를 왜곡하는 재벌의 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1. 경제는 민주화 대상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부정이다. 자유기업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와 민주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의 부정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경제 균형, 소득분배, 경제권력 남용 방지 등 경제민주화를 위해 시장에 개입할 책임이 있다.

경제민주화 부정은 시대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글로벌 사회는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이미 파산 선고를 내렸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화두는 미국 뉴욕 월가의 점거시위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었다. 친재벌론자인 이명박 대통령조차 2월23일 글로벌코리아 2012 기념사에서 “시장만능주의를 막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자유기업원의 누리집을 보면, 1997년 최종현 당시 전경련 회장이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바로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자유기업원은 헌법은 물론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부정하고 있다.

2. 재벌은 양극화와 무관하다?

둘째는 양극화에 대한 재벌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양극화는 재벌 개혁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한 방송토론회에서 “양극화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격차 때문인데, 대·중소기업 간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실적이 좋은 것은 수출이 잘되기 때문이고, 중소기업의 실적이 안 좋은 것은 내수가 부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도 시론에서 “양극화에 재벌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범은 세계화”라며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과 주범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물타기를 시도했다.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는 양극화의 뿌리 중 하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리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부당 단가 인하 사건을 조사했을 때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삼성전자의 이익 중에서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이다. 재벌이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하는데도 납품업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며 신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 정책은 ‘낙수효과’(재벌이 잘되면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견해)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대표적으로 고환율 정책이 꼽힌다. 고환율 정책은 대기업에는 유리하지만 중소기업에 불리하다. 중소기업은 환율이 올라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어나면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된다. 반면 대기업은 환율이 오르면 수출경쟁력에 더욱 유리하고 수익성이 좋아진다. 이렇게 고환율 정책은 양극화 심화를 초래한다. 또한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유지에 필요한 달러 매입에 사용하려고 연간 수십조원의 채권을 발행한다. 수조원에 달하는 채권 이자와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부자감세는 또 다른 양극화 심화 요인이다.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재벌이 이제 와서 그 은혜를 모른다면 국가경제의 장남 자격이 없다.

3. 재벌 경제력 집중은 사실 아니다?

셋째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부정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양극화를 심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우월한 힘을 악용해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하고,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관행적 담합으로 소비자의 피해를 양산한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듯이 경영이 부실화할 경우 국가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를 높이고, 경제권력을 넘어 정치권력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언론들은 흔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례로 재벌의 계열사나 자산, 매출, 순이익이 급증한 것을 꼽는다. 또 재벌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기도 한다. 2010년 20대 재벌의 매출액이 (명목) GDP의 74.8%나 차지한다는 식이다. 전경련은 이런 수치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어린이가 나이가 먹을수록 키가 커지고 체중이 늘어나듯이, 기업의 성장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국가경제 전체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GDP는 부가가치로, 매출과 성격이 다르다. 단순 비교는 정확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쉽게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 여부를 한눈에 보여주는 통계 자료는 없다. 하지만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간접적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전체 법인세 신고 기업 30만여 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2010년까지 3년간 총자산 증가율은 연평균 11.4%다. 같은 기간 20대 재벌그룹의 연평균 자산 증가율은 18.6%로 훨씬 높다. 매출액 증가율에서도 전체 기업은 11.9%지만, 20대 그룹은 18%로 더 높다. 매출액순이익률도 전체 기업은 4.3%(세전 기준)지만, 20대 재벌은 22.9%(세후 기준)로 5배 수준이다.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 모두에서 전체 기업의 평균치보다 재벌이 월등히 앞선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월29일 개최하는 재벌 개혁 토론회 발표자료에서 흔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보여주는 지표인 일반집중도(상위 대기업이 국민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가 증가 추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가장 최근 조사 시점인 2008년의 경우 상위 100대 기업의 일반집중도(출하액 기준)가 51.1%로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라고 밝힌다.

4. 재벌 개혁은 포퓰리즘?

넷째는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포퓰리즘이나 재벌 때리기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현대그룹 출신이 사장인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정치인들은 표를 얻으려 대기업의 탐욕을 과장하고, 서민의 질투심을 자극한다”고 선동적 표현을 썼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하자 위기감을 느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생존하기 위해 대기업 때리기 포퓰리즘을 내세운다”고 주장했다. <서울경제>는 “정치권의 빗나간 대기업 때리기는 결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와 한국 경제의 후퇴를 자초할 것”이라며 재벌 개혁을 ‘마녀사냥’에 비유했다. <한국경제>도 칼럼에서 “초가삼간 태울 재벌 개혁”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재벌 개혁은 대기업 때리기나 옥죄기가 아니다. 유종일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은 “재벌 개혁은 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며 “총수의 전횡과 사익 추구, 경영권 세습 등 전근대적 재벌 지배구조에서 해방시켜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키우자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또한 재벌 개혁은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고용창출력을 높이고 분배를 개선해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재벌 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그동안 선거 전에는 재벌 개혁을 강조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하는 일이 반복됐는데,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면 앞으로 포퓰리즘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지속적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5. 골목상권 붕괴는 재벌 탓이 아니다?

다섯째는 골목상권 붕괴는 재벌 탓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재벌 관계자는 “종합식품기업인 아워홈이 골목상권을 잠식한다는 비판에 따라 순대와 청국장 사업을 포기했지만, 지난해 관련 매출액은 고작 1억원과 2천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유기업원도 최근 방송 토론에서 “골목상권의 생계형 자영업자가 위협받는 것은 (재벌이 아닌) 대규모 프랜차이즈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연간 매출이 수십조∼수백조에 달하는 재벌이 주력사업과 연관성이 없는 구멍가게 사업까지 꼭 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를 생산하는 글로벌 대기업이 왜 커피·빵·매점까지 하느냐고 하면 재벌은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선진국의 대기업은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삼성의 호텔신라가 커피와 베이커리 사업에서, 현대자동차의 해비치가 사내 매점 사업에서, 롯데가 베이커리 사업에서 각각 철수한 것은 재벌의 탐욕과 무절제라는 비판에 맞설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로 실제 중소기업이나 생계형 자영업자가 죽는 문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박사는 “대기업의 자판기, 외식업, 학원업, 자동차경정비업 등의 진출은 명백히 생계형 자영업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또 대규모 프랜차이즈 중에는 재벌 계열도 다수다. 커피전문점의 경우 삼성 외에도 신세계 스타벅스, 롯데의 엔제리너스, CJ 투썸플레이스 등 재벌 계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기업가는 하고 싶지 않은 사업도 국가를 위해 해야 할 때가 있고, 이익이 나는 사업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참으로 명언이다.

6. 재벌 개혁은 소비자 후생에 역행하나

여섯째는 재벌 개혁이 소비자 후생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자유기업원은 “재벌에 대한 사업 규제는 결국 더 싸고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정치권은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지극히 근시안적 접근이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치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다 죽으면 해당 시장은 몇몇 대기업만 남는 독과점 상태가 된다. 독과점 산업은 담합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 궁극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 공정위가 시장지배력 남용 가능성이 큰 산업으로 정유, 자동차 등 46개를 지정할 정도로 국내시장은 독과점이 이미 고착화돼 있다. 또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몰락하면 복지 예산이 증가하는데,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출처 :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1484.html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며칠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금융정보분석원의 고액 현금거래 자료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권을 확대하기 위한 법률개정 추진 사실을 밝혔다. 투명성 증대와 조세정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기득권자들의 교묘한 반론이 나올 것은 충분히 예상했지만, 이 소식을 전한 기사에 붙은 댓글들이 압도적으로 적대적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야권 지지자들 상당수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인 것 같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이 대표하는 정치세력 일부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적 행위들이나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하여 대선 결과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앞을 보고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선거는 선과 악, 아와 피아의 투쟁이 아니다. 하나의 정치공동체에 안에서 서로 다른 비전과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집단이 경쟁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통합과 전진을 위해서는 이것이 선의의 경쟁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대다수 힘없는 국민을 위해서 새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정부가 힘없는 국민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희망의 토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인수위에서 새 정부의 비전을 경제는 독일식으로, 복지는 스웨덴식으로라고 요약한 적이 있다. 최대한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야권과 진보진영을 위해서도 새 정부의 성공은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야권과 진보진영에게 독약이 되었다. 반사이익에 눈멀어 쇄신을 외면하고 기득권에 집착한 것이다. 오죽하면 압도적인 정권심판과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연전연패 했겠는가. 야권 지지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잘하도록 격려하고 감시하며, 잘못은 신랄하게 비판하되, 항상 좋은 정책대안 제시에 힘써야 한다.

그러나 역시 새 정부 성공의 열쇠는 박근혜 당선인 본인이 쥐고 있다. 당선인에 대한 지지율이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당선인이 지지율에 일희일비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지율 추락에 담긴 민심을 무시하면 더욱 안 된다. 행여나 일부 측근들의 말처럼 원칙을 내세우며 돌파를 시도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인사문제다. 당선인도 이를 인식하고 최근 인사검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미흡한 처방이다. 인사문제가 단지 도덕성 검증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잘 수행해낼 만한 소신과 능력을 갖춘 인사를 발탁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간의 인선은 이런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약속했던 책임총리는 어디 가고 보필총리란 말인가.

인사문제 못지않게 중요하게 지적되는 것이 소통문제다. 소위 깜깜이 인사로 대변되는 비밀주의 행정은 여론이 사전에 반영될 길을 스스로 차단한다. 잘 알려야 잘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충직한 이들을 가까이 두고 달콤한 말로 지도자를 이용해먹으려는 간신을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일을 여론 눈치를 보며 할 수는 없다. 측근들과의 논의과정에서부터 비판적인 견해가 제기되고 고려되어야 한다.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의 교훈을 잘 새겼으면 한다.

공약 수정 문제도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 공약이행을 거듭 다짐하는 당선인의 자세는 좋다. 그러나 큰 그림을 보고 세부사항에서는 유연해야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만든 공약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지도자가 실수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좋은 대안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신뢰와 지지는 강해질 것이다.

당선인은 좋은 결정을 내리는 일보다 좋은 결정이 도출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비례대표제도

유종일

1. 18대 대선과 경제민주화의 전망

지난 111일 연합뉴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제정책에서는 독일식 중소기업 육성책을, 복지정책에서는 스웨덴식 사회서비스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참으로 놀랍고 고무적인 발상이다. 이후 박근혜 당선인은 보수 기득권층의 대선공약 수정 압력에 맞서 공약 실천의지의 재확인하고 나아가 경제민주화 필요성을 재천명하였다. 이정도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믿고 기대해도 좋을까?

필자는 민생의 개선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지만 경제민주화에서 큰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대선 이전부터 강조한 것처럼 경제민주화는 법 몇 개 만들어서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입법은 물론 법과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엄청난 반대와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를 뚫고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신념은 물론이거니와 집권세력의 이해관계가 경제민주화 철학과 일치해야 하며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한 것인데 이런 면에서 상당한 한계가 이미 노정되었고, 또한 정치민주화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도 궁극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질 일인데 박근혜 당선인의 리더십이 그런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요구를 잘 수렴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더라면 경제민주화의 전망이 매우 밝았을 것이라는 것도 아니다. 집권세력의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와 역량이라는 면에서 보면 야권의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도 그다지 미덥지만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었다.

한마디로 대선 결과 경제민주화 전망이 크게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경제민주화는 정파적 이슈가 아닌 역사적 과제이기 때문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정권에서 결정적으로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경제민주화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상당한 세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개될 것이다.

2. 역사적 과제로서의 경제민주화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가주도 경제발전을 추진했다. 그 결과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바람직한 경제의 모습은 아니었다.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재벌독점과 노동탄압, 지역간·계층간 불균형 등 심각한 경제왜곡과 모순을 만들어냈으며, 만성적인 인플레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경제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치적 억압과 더불어 경제적 모순의 심화가 군사독재정권의 종언을 초래한 것이다.

19876월 민주항쟁으로 개발독재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직선제 민주주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 시대에 경제정책의 사조에 있어서는 개발독재 하의 국가주도 관치경제를 민간주도 시장경제로 개혁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는 분명 필요한 개혁이었지만 동시에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벌과 같은 경제권력을 규제하며 노동자와 같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직선제 민주주의 하에서 재벌개혁, 노동권 강화, 복지와 재분배 등 경제민주화 요구는 힘을 받지 못하였고, 시장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득세하였다.

그동안 시장화의 길을 내달은 한국경제는 근본적인 모순에 봉착해 있다. 재벌은 문어발 확장에 열을 올리는데 골목상권은 붕괴되고, 대기업 이익은 폭증하는데 임금과 중산층 이하 가계소득은 뒷걸음질 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대다수 국민의 삶은 팍팍해지는 모순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극도로 불행하고 청년은 희망을 잃은 나라, 중장년층은 장시간 노동에 허리가 휘면서도 고용불안과 노후불안에 시달리는 나라, 노인들은 압도적인 빈곤률과 자살률 통계가 보여주듯 삶을 지탱하기도 힘든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국민들의 인식에 대전환이 왔다. 이제는 제발 성장에만 올인하지 말고 분배도 좀 하고 복지도 좀 하자는 것이며, 1% 특권층을 위한 경제가 아닌 99%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경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며, 시장만능주의와 친기업주의를 넘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의 현대사는 개발독재 하의 산업화, 직선제 민주주의 하의 시장화 단계를 거쳐 바야흐로 경제민주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3. 직선제 민주주의의 한계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를 이루기는커녕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강화되어버린 까닭은 무엇인가? 당시 전 세계적으로 미국주도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신자유주의가 횡행하였다는 시대적 배경이 한 가지 요인이다. 특히 IMF 위기로 인해 우리는 그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사정 못지않게 중요한 원인이 직선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한계였다.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저급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정치란 무릇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독재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권력싸움 위주의 정치문화가 형성된 데다가,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정치제도가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역주의를 근거로 기득권화 한 양대 정치 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권력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장화 일변도의 정책이 득세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 정치의 두 축을 이루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다. 양당의 정책적 차이는 대북정책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한 사실이다. 양대 정당은 지역할거주의를 활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직선제 민주주의아래서 주거니 받거니 권력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은 야권연대를 구축하고 매우 진보적인 정책공약을 내놓았지만 이는 얄팍한 선거전술에 불과했고, 대선 패배 이후 당내에는 중도 회귀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4. 비례대표제도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문제해결을 위해 정책을 생산하고, 갈등조정을 위해 대화와 타협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이런 순기능은 별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쟁으로 날이 새고, 특히 선거에 임해서는 정책경쟁보다는 살벌한 권력투쟁이 지배한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정당을 불신하며 정치 무관심에 빠지기도 한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의 징표로 나타났던 것이다.

정치가 꼴 보기 싫으니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정당국고보조를 없애자는 식의 여론이 있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왜곡된 정치를 바로 잡고 정치의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데, 정치를 무시하고 축소시키는 탈정치를 해법으로 삼는 것은 엉뚱하다. 이명박 대통령 식이다.

새로운 정치주체와 정치문화의 형성을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서 기성 정당을 심판하고 새로운 정당이 득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소선거구제는 군소정당에 대한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어 있고, 이는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양대 정당의 기득권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다. 정치시장의 독과점화로 유효경쟁이 사라지고, 저질 정치가 지속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원래 지역의 재력가나 명망가에게 유리한 선거제도이다. 더구나 양대 정당의 정치시장 독과점은 당 실력자들의 공천권을 통해서 정치신인의 등용 과정을 타락시킨다. 공적 가치에 헌신적이며 유능한 인재보다는 당 실력자들에게 유용한 인사들이 공천을 받기 십상이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와 공천제도의 개혁이다. 선거제도는 비례성 강화, 공천제도는 공정한 심사 강화의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비례성 강화를 위한 최적의 방안은 정당명부비례대표와 소선거구제를 혼합한 독일식 제도다. 공천개혁방안으로 모바일투표나 여론조사 또는 예비선거 등은 동원선거, 인지도와 현역 프리미엄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선거에 임박해서 급조하는 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당 실력자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한다. 치열한 검증을 거치는 슈스케 방식과 잘 고안된 배심원제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개발독재 아래서 산업화를, 직선제 민주주의 하에서 시장화를 이루었다. 이제 비례대표제를 기초로 한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우리 국민의 요구와 참여로 이루내야 할 과제이다.

(13.2.15. 제4회 비례대표제 포럼 발제문)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민주통합당의 ‘중도화론’은 해묵은 논쟁이다. 총선·대선 등 선거에서 패배할 때마다 당 정체성에 대해 “우클릭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으려면 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말 동안 경향신문 기자들과 통화한 정치학자들은 예외 없이 “정당의 입장이 일관성 없이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는 시계추 같아선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은 2008년 중도개혁 노선을 표방한 ‘뉴민주당 플랜’을 추진했다. 지금처럼 2007년 말 대선, 2008년 총선을 모두 패배한 뒤였다. 당내에선 이념적 좌편향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했단 진단이 쏟아졌다. 같은 해 10월 정세균 대표는 뉴민주당비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듬해 5월 당은 성장 우선의 중도개혁으로 노선을 선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2중대’ 논란 속에 1년여 만에 중도개혁 노선은 폐기됐다. 민주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와 10·3 전당대회 등을 거치며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정책을 뼈대로 하는 ‘3+1 보편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과감한 ‘좌클릭’이었다. 이때 한나라당도 감세 철회와 무상급식 수용 등 진보적 입장을 흡수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민주당은 2008년 우클릭 했다가, 2010년 다시 좌클릭 하는 등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인상주의적 비평에 의거해 좌우를 오갔다”며 “당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하고, 선거공학적 판단이 중요하더라도 시계추처럼 변화하는 식은 안된다”고 말했다.

특히 진보적 이념에 치우쳐 선거에서 졌다는 식의 해석은 부정확한 진단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정권 때도 민심을 얻지 못한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언행 불일치’에 따른 신뢰 상실 때문이란 것이다. 서민·중산층을 대변한다면서 실제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도입해 서민층의 삶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저소득층이 노무현 정부 때 등록금이나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크게 실망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좌로 가자, 우로 가자 외칠 때가 아니라 아래로 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2011년 4·27 재·보선 승리 직후 당의 자만과 중도실용 노선으로의 우클릭 조짐에 경고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다. 고 김근태 상임고문은 “분당에서 인물론이 통했고 중간층이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니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도노선·중도주의를 내걸자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된다”며 “중도실용이 캐스팅보트로 보이지만 곧 낭떠러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 선명성을 강화하느냐 중도층을 끌어안느냐를 놓고 당내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 등은 서민층을 겨냥해 ‘담대한 진보’ 기치를 내세운 반면 일부 의원들은 중도층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신축적 노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맞섰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현실 정치에서 진보냐 보수냐 이분법적인 접근은 옳지 않으며, 따라서 무조건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백해무익하다”며 “민주당은 진보적 입장을 중용의 덕목에 맞게 변형해 계층·부문별로 제공하지 못해서 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민주당이 백척간두에 서있다.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도대체 몇 번이나 선거 패배를 되풀이하고 있는지 세기도 힘들다. 지방선거에서 한번 이겼지만, 그거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지 민주당에 대한 지지의 표현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난 총선과 대선은 매우 유리한 선거를 망쳤기 때문에 그 상처가 치명적이다. 민주당, 과연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각각 총결집한 선거였고, 여기서 졌으니 앞길이 막막하다는 둥, 원래 한국 사회는 보수가 진보보다 우위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둥, 그러니 앞으로 야권은 정책과 이념에서 중도로 가야 한다는 둥, 이런 식의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따라간다면 민주당은 머지않아 소멸하고 말 것이다.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많은 유권자들은 보수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진보를 거부한 것도 아니다. 단지 누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누가 국정운영을 더 잘할까 하는 관점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보다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판단했을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후보를 찍은 많은 유권자들도 딱히 진보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언제부터 진보였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보수니 진보니 하는 딱지에 별 관심이 없는 대다수 국민들을 제멋대로 진영논리에 따라 구분하고 재단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과연 대선 패배가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었는가? 그래도 48%를 받았으니 선전한 것인가? 터무니없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다. 보수진영의 후보마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국민 여론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다. 야권과 진보세력이 이슈를 주도해야 마땅한 판이었다. 그러지 못한 무능의 근저에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그 때문에 총선에서는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상대 당한테 단독과반을 헌납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반성과 혁신은커녕 ‘사실상의 승리’라는 궤변으로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으니 대선 패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일화 국면에서 안철수라는 소중한 자산에 상처를 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일이다.

영호남의 인구 비중이나 인구 고령화를 들어 보수 우위 구도의 고착화를 예측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영남 사람이건 노인이건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서민들은 자기편이 누군지도 모르고 ‘계급배반투표’를 한다고 불평한다. 오만한 시각이고 비겁한 변명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등록금도 집값도 엄청 뛰고 비정규직 비중과 빈부격차가 크게 늘어난 사실은 어찌하란 말인가. 민주당 공약이 진보적이었다고? 당원들이 제대로 토론 한번 하지 않고 엄청난 노선 선회를 하는 정당을 어찌 믿나. 전당대회를 해도 늘 당권 싸움만 했지 정강정책을 두고 논쟁 한번 했던가.

민주당이 살아나려면 기득권 포기부터 해야 한다. 립서비스는 사절이다. 총선·대선 패배에 책임이 큰 이들 다섯명이라도 의원직 정도는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계파 안배의 장막 뒤에 숨으려 하지 말고 당원들의 치열한 토론과 엄정한 평가를 통해 스스로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 낡은 이념 틀과 진영논리는 벗어던지고 오로지 민생을 화두 삼아 민심의 바다에 겸손하게 다가가야 한다. 정권의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이나 챙기려던 구태를 청산하고,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남 눈의 들보보다 제 눈의 티끌을 먼저 보고, 심판과 증오의 언사보다 창조와 연대의 언어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2013.02.03 23:11

 아래에 첨부하는 파일은 지난 28일 진보의 혁신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진보의 위기를 세계사적 차원과 한국적 맥락에서 살펴보고 혁신의 길을 모색하는 매우 거시적인 내용입니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이해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추후에 시간 나는 대로 관련된 글을 쓰겠습니다.

130128_좋은정책포럼발제.pptx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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