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경제]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요즘 케인스의 유효수요론이 상한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비자발적 실업이 만연할 수 있고, 이 문제는 정부의 재정지출로 해소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지금 세계 각국이 유효수요론에 입각한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칼레츠키라는 폴란드 출신 경제학자도 케인스에 앞서 독자적으로 같은 이론을 개발했다. 마치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각각 독자적으로 미적분학을 발명한 것과 유사하다. 칼레츠키는 케인스처럼 세련된 화폐이론을 구축하진 못했지만, 유효수요론의 정치적 함의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꿰뚫어보았다. 일찍이 1943년에 발표한 ‘완전고용의 정치적 측면’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재정정책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은 간단한 기술적 문제지만 정치적 반대가 난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완전고용이 장기간 지속되면 노동규율이 약화되고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져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따라서 자본가들과 금리생활자들이 긴축을 요구하리라는 것이다. 결국 노조가 생산성 향상에도 힘쓰고 지나친 임금 인상도 자제해 주며, 자본가들도 노동자들의 복리 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서 노사갈등을 최소화하지 않고는 완전고용의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의 저서 <진보주의자의 양심>(번역서의 제목은 <미래를 말한다>)이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학원생 시절 그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고, 이후 그의 주요 저작들을 대부분 읽어 온 필자는 이 책을 읽고 조금 놀랐다. 경제이론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고 노력해 온 크루그먼이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 것이 아닌가.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정치라는 것이다. 중산층 위주의 번영을 구가하던 미국이 극심한 양극화의 수렁에 빠진 것은 경제이론이 제시하는 대로 기술의 변화나 세계화의 결과가 아니고, 감세와 규제완화 등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우파가 공화당을 장악하고 정권을 잡아서 나라를 오도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래서 이 책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라고. 미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클린턴의 유명한 슬로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를 뒤집어본 것인데, 원판에 못지않은 호소력이 있다.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난리다. 우리 경제도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금융위기란 게 뭔가. 생산설비도 인적자본도 그대로 있으니 생산력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자금의 흐름에서 발생한다. 금융경색으로 전반적인 수요가 위축된다. 또한 부채를 많이 안고 있는 경제주체로부터 유동자산과 신용을 가지고 있는 경제주체로의 소유권 이전과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의 축소를 포함하는 구조조정이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일정한 구조조정은 시장경제의 역동적 효율성의 조건이며 또한 그 결과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일시에 대규모로 일어나면 수많은 개별적 피해와 더불어 총수요 위축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정부의 현명한 정책대응으로 금융경색을 완화하고, 총수요 위축을 막아내고, 질서정연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면 금융위기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신뢰가 증발해 버린 상황에서 각자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금융경색 완화도, 질서정연한 구조조정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뢰 회복과 합심협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이다.
 
결국 완전고용도, 동반성장도, 금융위기 극복도 정치를 잘해야 가능하다.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가 아닌 통합을 이루는 정치! 경제 살리기의 첫걸음이다.
 
@한겨레 칼럼
Posted by 유종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