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경제]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의 비밀 /유종일
 
작년 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그 파장이 이렇게 클 줄 짐작한 사람은 드물었다. 신용등급이 양호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프라임(우량),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대출을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이라고 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 중 신용이 취약한 계층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일이 점차 늘어났다. 서브프라임 대출의 부실화다. 여기서부터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작금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월가에 포진한 금융공학의 귀재들은 서브프라임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몇 번의 자산유동화 과정을 통해 엄청나게 복잡한 파생상품들을 만들어냈고, 고수익을 좇아 이런 파생상품들에 많은 투자를 한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대출이 부실화되자 큰 손실을 입고 파산 위기에 몰렸다. 월가를 대표하는 대형 투자은행들을 포함해서 많은 금융기관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금융시장 전체의 붕괴를 우려한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고, 이러면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이제 망한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오게 되었다.
 
위기의 씨앗은 눈앞의 고수익에 눈이 어두워진 금융기관들이 신용이 취약한 계층에게 높은 이자에 마구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신용이 취약한 정도가 아니라 생전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 직업도 없는 사람,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만 골라서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이 있다. 이런 일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이다. 놀라운 것은 그라민은행의 가난한 고객들은 대출금을 너무나 잘 갚는다는 사실이다. 대출회수율이 98%에 이른다. 2006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는 “우리 고객들은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서브프라임 위기는 없다”고 말한다. 그라민은행과 같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은행 수천 개가 세계 곳곳에서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갚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과 그라민은행의 서브 서브 서브프라임 대출의 차이는 뭘까? 그라민은행은 사람을 살리려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은행이다. 미국의 은행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은행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기계적인 공식에 입각해서 신용등급의 숫자로 취급한다. 자기를 살려주려고 한 은행에 대해 아무리 가난해도 최선을 다해 돈을 갚으려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자기를 숫자 취급하는 은행에 대해 조금만 사정이 어려우면 돈을 안 갚아버리는 것도 이해가 가는 노릇이다. 사실 미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에 주력해 온 비영리기관들은 지금 95%정도의 대출회수율을 보이고 있다.
 
금융의 기본은 신용이다. 신용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기업을 살리고,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이다. 금융공학은 이를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고수익은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진리는 아무리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도 변하지 않는다. 금융공학의 기법으로 나쁜 일(자산부실화)이 일어날 확률을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확률이 줄어든 만큼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의 피해는 더 커지기 때문에 결국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이를 기초로 한 관계야말로 사람을 변화시켜서 위험자체를 줄여준다.
 
금융선진화도 좋지만 ‘돈 놓고 돈 먹기’식 금융이 아닌 사람을 살리고 산업을 살리는 금융을 생각할 때다.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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