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했다. 재무부의 금고가 바닥나기 직전에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증가시키기로 민주·공화 양당이 합의를 했다. 이로써 연방정부 셧다운 문제도 해결되었다. 미국의 정치쇼를 가슴 졸이며 쳐다보던 세계 금융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브레튼우즈 체제를 뒷받침하며 세계 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하던 미국 경제가 어느덧 세계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이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흔히 미국의 재정적자 누적으로 인한 연방정부 부채의 급증이 근본원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미국 리스크의 본질은 미국 정치의 양극화이고, 그 이면에는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 정부의 부채가 엄청나게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채무불이행 사태에 몰려야 할 경제적 이유는 전혀 없다. 향후 정부부채 증가의 전망이 결코 비관적이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도 달러로 빌린 부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달러를 찍어서 갚을 수 있다. 지금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디폴트 리스크는 미국 정부의 부채가 많아 채무변제능력에 의문이 발생함으로써 비롯된 것이 전혀 아니다. 순전히 부채한도라고 하는 인위적인 정치적 제약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공화당의 벼랑 끝 전술 때문에 현실화 가능성마저 있다.

공화당은 정부부채의 위험성을 과장하며 재정지출 축소를 주장하지만, 애초에 미국정부의 부채증가는 지출증대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다. 과거 레이건이나 부시 등 공화당 정권이 단행한 부자감세가 원인이 되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경제가 침체하면서 세수가 저조하여 빚어진 것이다. 금융위기 직후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기도 했지만,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2010년부터는 재정이 긴축으로 돌아서서 미국경제의 회복세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공방이다. 민주당은 뉴딜의 유산인 미국식 복지국가를 확대하려고 하는 반면, 공화당은 복지국가를 해체하여 시장만능주의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공화당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문제를 야기해놓고, 이의 해결책으로 재정지출 축소를 주장해왔다. 이는 필자가 과거 ‘‘복지 여왕’과 참 나쁜 정치’라는 칼럼에서 설명한 대로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하여 복지국가를 해체하고자 하는 공화당 강경우파의 고의적인 전략이었다. 이번 정부 셧다운과 디폴트 위협도 오바마 정부의 전국민의료보험 강제가입 정책을 무산시키기 위한 공화당의 책략 때문에 야기된 것이었다.

금융위기의 일차적 책임자이며, 온갖 억지주장으로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무책임한 벼랑끝 전술을 일삼는 공화당이 어떻게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공화당 강경우파는 금융자본, 대기업 등 기득권층의 지지를 업고 경제적 양극화로 ‘아메리칸 드림’을 상실한 서민층의 막연한 반정부 정서를 활용하여 공화당을 장악했고 미국 정치의 한 축을 장악했다. 공화당의 우경화와 정치적 성공의 배경에는 경제적 양극화가 있다. 1%에 소득이 집중되면서 갈수록 금권정치가 강화되었고, 저소득층은 정치과정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공화당의 강경우파는 권력을 잡아 경제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책을 실행하고, 그 결과 정치적 기반을 더욱 공고화하는 성공적인 전략을 추구해왔다.

여론의 압박을 받은 공화당이 일시적으로 정부의 숨통을 틔워주었지만, 미국의 디폴트 리스크는 조만간 다시 부상할 것이다. 미국 정치의 볼모로 전락한 세계 경제가 미국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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