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

□ 자유주의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특정한 내용으로 구현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만인의 자유와 인권, 법 앞의 평등이라는 핵심적인 내용은 인류사를 통해서 보편적 이념의 지위를 획득했다.

◦ 자유, 인권, 평등에 대한 요구는 권력의 압제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표출되고 발전되어 왔다.

◦ 공동체에 의한 속박과 편견에 대한 개인의 저항은 이에 비해 좀 더 더디고 불명확하게 표출되고 있어서 도덕적으로 애매모호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 프랑스의 히잡 착용 금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공동체만이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공동체적 가치를 부정할 수도, 해서도 안 되지만, 개인에 대한 억압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동체도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흔히 타인에 대한 배려나 평등을 공동체적 가치로 취급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자유주의적 가치이다.

2.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왜 자유주의가 진보인가?

□ 강고한 집단주의 문화로 인해 개성과 인권 및 다원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 최근에는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전통적으로 “짜장면 통일”이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로 대표되는 순응주의(conformism) 문화가 강고하다.

◦ 성적 소수자나 다문화 가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범죄 피의자나 학생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보호도 미흡하다.

◦ 정치적으로도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최근 심상정의 후보사퇴나 노회찬의 완주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 한 사례다.

◦ 집단주의 문화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붉은 악마’는 일종의 카니발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국가대표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K리그에 대한 싸늘함은 스포츠 영역에 나타나는 국가주의가 한 원인이다.

◦ 거꾸로 강고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정서가 집단주의 문화를 온존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집중, 권력투쟁 중심 정치, 비타협적 정치문화 등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만연해 있다.

◦ 제왕적 대통령, 중앙정부 권력집중, 수도권 집중 등의 다양한 권력집중 현상이 거의 완화되지 않고 있다.

◦ 정치세력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념을 대표하고 이를 절충해나가는 정치보다는 이념은 모호한 채로 권력투쟁에 올인하는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 민주화가 자유주의에 선행하여 이루어짐으로 해서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측면이겠으나, 자유화 이전의 민주화는 비서구 나라들의 민주화에 공통된 현상이었다는 점에서 남북분단이나 역사적 전통 등 다른 요인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국가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가 형성되었고, 관치경제적 경제운용이 만연하고 있다.

◦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는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적 덕목인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경제력 집중을 야기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관치경제는 시장 메커니즘을 왜곡하여 시장의 정의와 효율성을 저해한다.

◦ 이명박 정부에서 재벌구조와 관치경제가 강화되고 있다.

◦ 재벌개혁과 관치경제 청산으로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꼭 자유방임주의나 시장만능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 정보 등 시장의 실패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규제 등 적절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기회의 평등이 매우 중요하고,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면 안 된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사회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3. 한국 진보의 이념: 민족주의, 사회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 일제시대 이래 한국에서의 진보는 민족주의 and/or 사회주의 성향을 나타냈다. 자유주의는 오히려 냉전반공주의처럼 인식되어 보수적 이념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러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지만,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진보의 이념도 변해야 할 것이다.

□ 민족 분단의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래서 민족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배격할 수는 없지만, 고도로 개방된 경제와 지역경제통합의 진전, 급격히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체류자 등을 고려할 때 민족주의를 뛰어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천안함 사건)

◦ 화해협력 정책의 기조 위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 즉, 개인의 자유와 복리, 사회정의의 증진이라고 하는 근원적 가치를 중심에 놓고 접근해야 한다.

◦ 동아시아의 경제통합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과 문화적 교류증진에 힘써야 할 것이다.

□ 변혁의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진보는 반시장의 이념적 특성을 띠었으나,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이 입증된 이상 진보가 명확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최선의 경제체제로 수용해야 한다.

◦ 단, 시장경제라고 해도 자유방임에 가까운 모델부터 사회민주주의 모델까지 여러 모델이 존재한다.

◦ 한국이 어떤 특정한 모델을 추종한다기보다는 재벌문제, 관치문제,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저출산 문제, 복지확대 문제, 노사갈등 문제 등 여러 당면 현안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와 한국의 역동성을 합작한 것 정도?)

4. 진보적 자유주의의 정치적 가능성

□ 자유민주주의와 냉전반공주의 독재가 등치되었던 역사 때문에 자유주의는 보수도 진보도 마뜩해 하지 않는 이념이었지만, 민주화 이후에 자유주의에 대한 의식과 요구가 발전하고 있다.

◦ 특히 보수화되었다고 평가받던 20대가 반MB 투표를 하게 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정권의 반자유주의적 행태가 원인이라고 보인다.

◦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과거에 비해 훨씬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고, 다원성에 대한 존중도 향상된 것 같다. 과거의 변혁 이념은 관심 없지만 촛불로 상징되듯이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다.

□ 진보진영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한국사회에서 중도좌파를 중심으로 한 진보의 최대공약수를 찾으면 대체로 내가 진보적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어젠다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이상의 논의에 입각해서 이제 한국의 진보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유종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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