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케인즈의 부활
KDI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
 
"지금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일은 평소보다 더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만약 우리가 지출을 하나도 하지 않고 소득을 전부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모두가 실업자가 되지 않겠는가. ...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서 공공시설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대공황이 엄습해온 1931년 초에 케인즈가 라디오에 나와서 한 말이다. 케인즈의 이론이 확고한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흔히 알려진 대로 뉴딜정책의 성공 때문이 아니다. 뉴딜 기간에는 사실 과감한 적자재정 편성을 하지 못했고, 경기회복 속도도 더뎠다. 그러다가 2차대전으로 막대한 군비지출이 이루어지면서 실업문제가 하루아침에 없어져버렸다. 케인즈가 맞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케인즈의 이론에 반대하는 통화주의의 태두인 밀튼 프리드만이나 보수적인 공화당 출신 대통령 리처드 닉슨도 스스로 케인즈주의자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케인즈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케인즈가 지난 30여 년 간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뒷전으로 밀렸다. 학계에서는 프리드만의 후계자들이 합리적 기대가설이니 새 고전파 이론이니 하면서 정부정책 무용론과 시장의 자동조절을 주장하며 대세를 장악했고, 정부는 레이건대통령이래 보수적인 정권이 지속되면서 ‘작은 정부’를 내세우고 감세와 규제완화를 밀어붙였다. 중간에 클린턴 정부가 끼어들긴 했지만 '신민주파' 클린턴은 전통적인 민주당 노선을 버리고 중도노선을 따랐다.
 
역사의 시계추는 다시 좌를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에 의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케인즈의 처방을 충실히 따르는 셈이다.
 
어제의 시장만능주의자도, 규제완화론자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케인즈주의적 정책을 옹호하고 나서고 있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드러내놓고 친기업 정부를 표방하고, 감세와 규제완화, 민영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한 채 재정지출확대에 의한 경기부양을 주장한다. 재계도 환영일색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정부는 저리가라, 자유시장이 좋다고 하다가, 사정이 어려워지면 정부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건 너무 얌체라고 최근 스티글리츠 교수가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더 황당하다. 한편으로 규제는 다 풀어라, 시장에 맡겨라 하면서 또 한편으론 정부가 나서서 경기를 살리라는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기'를 동시에 하겠다는 거다.
 
금산분리 완화나 출총제 폐지 등을 정부 여당이 우선적으로 밀어붙이겠다고 하고, 감세는 감세대로, 또 SOC 등 지출확대는 확대대로 한다는 거다. 최저임금도 내리겠다고 하고 노동규제도 완화하자고 한다. 케인즈가 좀 황당해 할 것이다.
 
케인즈의 '일반이론'에서 두 구절을 인용한다. "한 나라의 자본 형성이 카지노 활동의 부산물이 되어버리면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다. ... 앞으로는 국가가 직접 투자의 조직화에 관해 점점 더 큰 책임을 떠맡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규제받지 않는 금융시장의 위험에 대해 누구보다 강하게 경고했던 게 바로 케인즈다.
 
"경기침체기에 명목임금이 점차 내려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임금이 경직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편이 훨씬 낫다." 임금을 낮추면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고전파 경제학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임금인하는 소득을 노동자로부터 다른 계층으로 재분배하게 되는데 이는 소비수요를 감소시켜서 고용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케인즈의 부활이 반갑다. 기왕이면 온전하게 부활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머니투데이 칼럼]
Posted by 유종일입니다